문화&여행
12년 만의 귀환, 서도호의 '무지갯빛 집' 열린다
기사입력 2026-08-26 18:53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무지갯빛 투명한 천으로 연결되어 서울의 중심부에 내려앉았다. 뉴욕과 런던, 베를린 등 작가가 머물렀던 도시의 집들을 22m 길이의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구현한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막을 올린다. 이번 전시는 8월 27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진행되며, 30여 년간 '집'이라는 화두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이동의 문제를 탐구해온 작가의 예술 여정을 총망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서도호 예술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미공개 초기작부터 2026년 최신작까지 5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군이다. 전시장 입구 복도에 설치된 '시드 뱅크'는 작가의 유년 시절 드로잉과 조각, 대학 시절의 실험적인 작업들을 모아놓은 예술적 저장고다. 어린 시절 마당의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품 등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작품들은, 훗날 세계 미술계를 매료시킨 서도호만의 독창적인 시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4전시실에서는 서도호의 대표적인 연작인 '러빙/러빙'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종이를 특정 장소에 밀착시킨 뒤 흑연으로 문질러 그 표면의 흔적을 기록하는 이 작업은,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기억을 동시에 담아낸다. 작가는 '문지르다'와 '사랑하다'의 발음적 유사성을 활용해 장소에 대한 물리적 기록을 정서적 유대로 승화시켰다. 성북동 한옥을 기록한 작품이 개인의 향수를 자극한다면, 광주극장 사택을 담은 작업은 공동체의 역사로 시선을 확장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3·4·5전시실과 공용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서도호라는 거장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심화되었는지 보여주는 입체적인 지도가 될 것이다. 관람객들은 투명한 천 사이를 거닐며 작가가 살았던 집의 문고리와 벽면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3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500여 점의 작품들은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작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프로젝트를 하나로 묶어내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기사인쇄 | 안연진 기자 ahnahn33@bridgetoda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