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여행
숲속 미술관 산책, 제주의 속살을 읽다
기사입력 2026-07-22 23:02
제주 여행의 패러다임이 풍경 감상에서 예술적 사유로 진화하고 있다. 서귀포 성산읍의 폐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공간이다. 평생 제주의 오름과 바람을 렌즈에 담았던 고(故) 김영갑 작가는 루게릭병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제주의 진짜 얼굴을 기록하는 데 생을 바쳤다. 그의 유해가 뿌려진 정원을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색채보다 자연의 고요함이 담긴 사진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제주를 가장 깊이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치열한 삶의 궤적을 마주하는 성지와도 같다.제주의 색채를 화폭에 담아낸 김택화 화백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도 빼놓을 수 없다. 조천읍에 위치한 김택화미술관은 한라산의 사계절과 돌담, 유채꽃 등 제주만의 서정적인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 122점을 선보인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한라산소주 패키지의 원화와 제주 현대사를 담은 삽화들은 예술이 어떻게 지역의 문화와 호흡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화려하게 꾸며진 관광지로서의 제주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섬이 가진 본연의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미술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제주 서부의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숲과 예술이 공존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그 중심에 자리한 제주현대미술관은 곶자왈의 생명력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한 ‘곶자왈: 숨결의 시간’ 전시를 통해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선보인다. 또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흥수 화백의 하모니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기획전은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라는 깊이 있는 미학을 전달한다. 미술관을 둘러본 뒤 숲길을 따라 늘어선 작가들의 작업실과 야외 조각들을 감상하다 보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붕 없는 미술관임을 깨닫게 된다.

제주의 미술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섬의 영혼을 기록하고 있다. 김영갑의 사진이 바람의 기록이라면, 김택화의 그림은 빛의 기록이고, 김창열의 물방울은 철학의 기록이다. 빠르게 명소를 섭렵하는 여행 대신, 거장들의 시선을 빌려 제주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여행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자연이 주는 감동과 예술이 주는 울림이 교차하는 제주의 미술관들은 올여름 가장 완벽한 휴식처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예술의 섬 제주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오색 빛으로 여행자들을 손짓하고 있다.
기사인쇄 | 안연진 기자 ahnahn33@bridgetoday.net